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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아나키스트의 맑스주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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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national-anarchist.net/2014/01/a-critique-of-marxism.html?m=1 번역 : 버줌 편집 : 김갑식 맑스주의는 인간과 사회적 삶의 전체를 과학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믿는 도그마(dogma)이다. 맑스주의는 모든 원인(cause)이 하나의 작용(operation)이 되고 모든 작용이 하나의 원인이 되는 절대적이고 기계적인 인과관계(absolute mechanical causality)를 상정한다. 밁스주의는 미래를 아는 척하고, 인간 발전의 조건을 제공하고자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맑스주의는 그저 과학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터무니없는 실패를 의미할 뿐이다. 그 누구도 과학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은 어느정도 주관적인 것이고, 단지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추정일 수 있다. 아마도 맑스주의의 가장 터무니없는 가정은 자본주의적 사실(capitalist facts)이 사회주의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가정일 것이다. 자본주의와 그것에 수반하는 불행이 그저 사회주의를 향한 여러 단계일 뿐이라는 생각은, 과학적 망상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비롯될 수 없고, 다만 부정의의 감정(a sense of injustice)과 단결의 욕망(a desire for togetherness)으로부터 자본주의에 대항함으로써만 성장할 수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가 노동자 유물론의 산물이라는 맑스의 주장과 반대로, 인류는 매우 다른 이유로 사회주의로 다가선다. 사회주의는 수많은 작은 변화의 결실일 뿐이다. 어느정도 자본주의가 "성숙"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민중 역시 심각하게 퇴화되어 사회주의의 달성은 말 그대로 불가능해질것이다. 맑스주의는 불변하는 역사 발전을 근거로 미래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의 의지와 행동이 이러한 미래를 막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맑스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역사발전의 연쇄에 필수적인 연결고리로 간주한다. 그들은 자신을 사회 발전의 ...

벌쳐 자본주의는 유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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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인간이 쳐부순다면 ,  그 가면 너머를 쳐부셔야한다 !”  아합 ,  모비딕 필자는 최근 터커 칼슨이  4 년전 필자가 소개한 바 있는 폴 싱어의 벌처 펀드 ,  엘리엇 어소시어츠에 대한 공격에 매우 흡족함을 느낀다 .  여러가지 의미로 이전에 엘리엇 같은 벌처 펀드들이 주요 언론의 관심을 벗어나 있었다는 것은 ,  그들이 얼마나 피해를 끼치고 착취적인가를 고려했을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  여러 나라들이 엘리엇 어소시어츠와 같은 집단에 상당한 부채를 지고 있고 ,  터커의 코너에서 분명히 드러난 바와 같이 ,  그들의 마수는 미국 소도시의 중심에 뻗치기에 이르렀다 .  바이러스를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일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  그러나 필자는 그러한 착취적 금융가 무리들이 야기한 문제들은 결국 이들의 진면목을 파악하였을 때 비로소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지금까지는 그들의 행적을 논하는 데 쓰여진 수식어는 그들의 시체를 뒤지고 기생충의 모습을 방불케 하는 성격에 한해서 발전해왔다 .  따라서 엘리엇 어소시어츠는  “ 벌처 펀드 ” 가  “ 벌처 자본주의 ” 를 실천하는 전형적인 예시로서 설명되어왔다 .  그러나 이들 펀드들은 시체 파먹는 새들이 운용하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은 거의 노골적으로 유대인들에 의해 운영된다 .  이 글에서 필자는 규모가 크고 영향력 있는  “ 벌쳐 펀드 ” 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대표자 ,  정신 ,  금융 행태 ,  그리고 그들이 구린 돈을 어떻게 뿌리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미사여구들은 제쳐 두도록 하자 .  가면 뒤에 숨은 것을 치도록 하자 . 대머리 독수리의 정체 엘리엇 ,  서버루스 , FG  헤미스피어 ,  오토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