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소고
소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소고
카진스키
1. 인간의 세계 안에 거하는 세계의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사건. 바이러스의 근원과 중화 보양식 사이의 연관성의 문제와 함께 대두된 중국인의 식성에 대한 비난과 이에 대한 방어를 보면서 전통의 잔재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경박한 대리전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가축과 야생의 구별,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에 대한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본능적 주제파악, 이에 대해 리버럴 윤리는 누가 무엇을 먹든 그것은 그의 자유일 뿐이다, 똑같은 욕구 충족 행위이다, 똑같은 삼대 영양소 중 하나일 뿐이니 네가 신경쓸 바가 아니라는 식의 "논리"를 우겨댄다. 이들의 형이상학에는 추상 속 전지전능의 경지에 조금 못미치는 자아와 그 앞에 그저 놓인 객체, 끝없이 쥐어짜낼 자원이라는 주종관계만이 남아있다. 모든 인간사의 맥락과 전통은 자아에 대한 제약이며 구속으로 벗어나야하만 하는 구시대의 압제, 이에 대한 투쟁을 주도하는 무리의 의도에 따라 세계는 재구성되어야 한다. 세계는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착취를 통해 정렬되야한다. 자유주의는 인간 전반에 대한 싸이코패스적 해체주의다.
근본적으로 박쥐탕 논쟁은 아귀의 악취가 진동한다. 인간의 지위와 존엄의 회복 여부는 자유주의 싸이코들을 저들에게 본래 주어진 온당한 자리로 돌려 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2. 유행병의 세계화. 세계주의가 자랑하는 교통과 통신의 눈부신 성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또다른 잠재력이 아닐까. 강력한 사회통제 능력과 발전된 과학 기술을 보유한 중국 땅에서 저정도라면, 한세기가 지나기 전에 이미 과도한 전 아시아 인구수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되는 아프리카에서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몽골로이드와 니그로이드의 복잡한 사회에 대한 이해의 현저한 차이를 고려했을 때, 친애하는 박애주의자들은 과연 이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세계의 파괴가 세계화에 종언을 고해야만 할 것인가?
3. 자칭 민주주의 정권이 입국금지, 국경폐쇄 등의 조치를 터부시하는 것은 무엇을 의식한 작태일까? 중국과의 외교, 근린친선 운운하지만 그 저변에는 자기 뇌내의 자유주의적, 다문화, 세계화에 대한 "양심"이 있지는 않은가? 어중간한 지력의 리버럴 논객들의 주둥이가 대변하는 주인님들의 꾸지람이 무서운 것 아닌가?
전세계로 잠재적 감염자들이 유출된 것에 대한 최종적이며 확실한 대응책을 각국이 실행하는 것에 외교적 마찰 가능성이 거부의 논거로 사용되는 이 세계는 얼마나 뒤틀린 것인가? 국가가 갖는 주권과 긍지는 자유주의 변태 윤리로 대체되었다.
4. 여론의 경박해보이는 의견표출을 제노포비아, 무지 따위의 슬로건으로 폄하하는 것은 일면 의로운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특정 질서 하에서 공인된 도덕이 내려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용이하다. 그렇기에 지적으로 게으른 행위이다. 여론은 무엇을 내포하는가? 인민의 감정은 존재를 드러내는가? 그곳에서 드러난 존재를 긍정할 것인가? 개처럼 죽을 것인가, 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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