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바르데슈 - 파시스트적 삶

 파시스트적 삶

모리스 바르데슈

Maurice Bardeche - Fascist Life

파시스트 국가의 목적은 특정 모델에 따라 인간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파시스트 국가는 도덕을 가르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파시스트는 이용가능한 의지와 에너지가 민족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파시스트는 민족의 에너지를 형성하고 보존하는 집단적 자질을 장려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파시스트는 규율, 질서에 대한 선호, 노동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의무감과 명예를 비롯한 민족적 기질을 개발하고자 한다. 이러한 민족적 도덕원칙의 일상 업무 상에서의 실천은, 책임의식, 연대감, 지휘책임에 대한 인식, 수용된 질서에 속하는 것에 대한 안락함 등의 중요한 과업으로 표현된다.

이런 감정은 학교 칠판에 쓰여진 문구에서는 배울 수 없다. 만약 교육이 아이들에게서 그것들을 일깨우려면, 체제 그 자체가 아이들을 인간으로 발전시키고자 해야 한다. 민족적 소득 분배의 정의에 기초하여, 적절하게 설정된 모범과 임무 등을 통해서 말이다.

규율은 마술봉을 휘두르는 행동 따위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호소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규율은 민족이 자기 지도자에게 보여주는 존경의 표시이다. 체제는 그러한 규율을 마땅하게 받을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같이 모든 행동을 진중하게 행하고, 국가에 대한 사랑을 성실하게 표현해야만 한다. 민족의 규율은 군대의 규율 처럼 제련된 무기다.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보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규율은 하나의 보상이다. 즉, 자신의 일에 전적으로 충실하며, 용기, 이타심, 정직의 본보기가 되는 모든 사람에 대한 보상이다.

이러한 민족적 의지의 응집은, 강조하건데 무결한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어떤 체제도, 체제의 권위보다 명예, 정칙, 도덕적 건강에 더 관심을 가져선 안된다. 무엇보다도, 이 점에 있어서 먼저 체제의 관료들이 완고함을 갖춰야만 한다. [즉, 민족사회주의 체제의 지도자들은 '내로남불'을 해선 안된다. 체제의 권위는 위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층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만 한다.] 이러한 양태가 과거에 항상드러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많은 것을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기도 하다. 상기한 자기 수양은 다른 사람에게 규율을 요구할 때 그 요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무결성의 정책은 그 이상을 함의한다. 그것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훼손하고, 역겹게 하는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교회 신도들과 도덕주의자들이 민족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포르노 잡지와는 다르다. [즉, 입만 나불거리며 포르노 잡지와 같은 수준인 주류 보수주의자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주장한다. 노동 없이 축적된 재산, 정당하지 못한 성공, 사기꾼과 악당들의 성공은, 민족에게 있어서 창녀들의 엉덩이보다 훨씬 더 비도덕적이고 해롭다. 우리는 도덕적 질서보다 선행하는 덕의 지배(the reign of Virtue)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노동과 양심을 모욕하는 놈들이 부자가 되는 사회적 악순환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민족에게 자신의 노동을 사랑하고, 진지하게 다루며, 정확히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하게 받아들인다.

파시즘은 단순히 민족의 또 다른 형상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새로운 형상을 제안한다. 파시즘은 인간의 몇몇 기질(qualities)은 다른 모든 것 보다 더 높이 평가할 만 하다고 본다. 그러한 기질은 개인적 삶에서 더 의미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게 힘과 지속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렵고 위험한 모험에 가담하는 인간에게 항상 요구되는 기질은 용기, 규율, 희생정신(the spirit of sacrifice), —전투하는 병사, 혹은 위험에 빠진 개척자나 행해사에게 필요한 덕목인—에너지 등이 있다. 이것들은 군사적이며, 소위 동물적 기질(animalistic qualities)이다. 이 기질들은, 인간의 최우선적 임무가 보호와 정복에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사교적이고 평화로운 도시생활은 우리가 이러한 임무를 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자연적 적수(natural adversaries), 예컨대 폭풍, 재앙, 사막과 같은 어려운 위업을 마주할 때, 그 최우선적 임무는 다시금 깨어난다.

인간의 동물적 기질은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다른 기질들을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동물적 기질이 결국 명예의 규범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충성심, 신의, 연대성, 이타심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것들 역시 오늘날 위험에 처해있다. 이러한 기질들은 불확실하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모든 순간 속에서 조차 항상 인간들 사이의 관계의 기초가 된다. [즉, 이러한 기질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 기질들은 모든 그룹의 사람이 살 수 있는 상호 약속의 체계를 구성한다. 다른 도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항상 달라지는 일련의 응용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실제로 기능할 뿐더러, 파시스트 이상이 필수적이라 여기는 이런 기질들은, 결국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며, 인간이라는 동물이 누구이며, 그것의 가치가 무엇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또 다른 기질들이 보유한 특유의 세련됨이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파시즘에서 이상적이라 상정하는 기질들은 다른 모든 유용한 인간적 기질의 기초로 작용한다.] 그러한 기질들은 군사적 사회(military societies)가 형성되고, 그들의 계급 구조가 형성되면서 스스로 부여한 호사이다. [즉, 이상적 기질들은 군사적인 환경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긍지, 맹세한 양심, 관대함, 용맹한 적에 대한 존중, 약자와 민간인에 대한 보호, 거짓말쟁이에 대한 경멸, 그리고 정당하게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전투와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그러나퇴폐한 [즉, 이상적 기질이 중심이 되었으나 결국 퇴락하고 만] 과거 도시들을 존중할 때, 이러한 '시민적 기질(civic qualities)'들은 알수없는 가슴뜀을 자극한다. 그 기질들은 이슬람 공국들과 사무라이 내부의 군사적 그리고 종교적 질서에서 발견된다. 근본적으로, 그 기질들은 군사적 사회가 자신의 소명에 따라 인정한 유일한 규범을 구성한다. 그것들은 군인의 명예를 위해 필수적이다. 우리는 수도자적인 전사들(warrior monks)들이 훗날 이상성행위자, 강도귀족, 그리고 극악무도한 군주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력은 언제 타락하지 않을 수 있는가? [즉, 이상적 기질을 가졌던 과거 선구자들이 결국 부와 권력에 무릎끓고 퇴보했으니, 그것을 방지할 방도를 파악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신념에 있다. 이 아름다운 인간이라는 짐승, 이 건강한 짐승인 인간은 파시즘을 꿈꾸었다.

전쟁의 진창(the mud of war)이 그러한 형상의 인간을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만들고, 전쟁의 격렬함이 복수심과 증오심의 바람에 휩쓸려 사막의 동상처럼 그러한 인간을 박살나게 했다는 것은 확실히 슬픈 일이다. [즉, 파시즘이 지난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여 완전히 몰락해버린 것은 인류에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었는가(this is what was)"라고 묻지 않는다. [즉, 파시즘이 사라졌기 때문에 단순히 그것을 회고하려는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은 파시스트의 이상, 오직 소수의 심장 속에만 있는 이상이며, 있을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정말 있었던 것이다." 라고 말한다. [즉, 파시스트의 이상은 실제로 존재했으며, 그것을 지금도 복권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파시즘의 형상은 존재하며, 여전히 웅장하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이름으로 파시즘을 부활시킬지도 모른다. 파시즘의 패배가 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물론 파시즘이라는 용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 용어는 악의에 찬 안개 아래서 바다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즉, 파시즘이라는 용어로 불리는 이 특정한 인간에 대한 형상화는, 파시즘이란 용어 자체가 절대악으로 자리잡은 만큼 더 이상 '파시즘'으로 불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우리 모두는 스파르타적 질서, 스파르타적 인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가 떠오르고 서구세계가 멸망할 때도 살아남을 유일한 방패이다.

레닌은 파시즘이 공산주의 독재에 맞서 항복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싸우지도 않는 사회가 생존을 위해 취할 마지막 형태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서구세계가 힘을 잃으면, 그것이 노인이 익사하는 것 처럼 사라진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몸부림 친다면, 오래된 레닌의 예언이 실현될 것이다. 다른 이름으로, 다른 얼굴과 함께,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게도, 과거에 대한 어떤 투영도 없이,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새로운 아이의 형태로, 혹은 젊은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고, 스파르타 질서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은 자유와 훌륭한 삶을 위한 마지막 방패일 것이다.

번역 : 체코경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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