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을 넘어서
휴머니즘을 넘어서
김갑식
나는 지금까지 글과 주장을 통해 여러차례 서구의 근대 휴머니즘을 비판했고, 또 서구중심주의의 사상적 극복은 결국 휴머니즘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해 왔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라는 소박한 비판을 해 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 물론 인간이 타인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본능으로서, 그것 자체가 죄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타인의 의사와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일방향적인 사랑, 아니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오만과 독선이다.
서구의 휴머니즘은 뿌리부터 타인에게 진정으로 닿지 못하는 유럽인의 사상이었다. 그들은 유럽인을 세계의 표준으로 두고 '인간'을 사유했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은 보편적인 인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성적 합리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근대적 주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사고의 연장에서 그들은 환경에 자족하며 평화롭고 목가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유럽 바깥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불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많은 유럽인들에게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가축이었으며, 설령 동정심을 가지고 대하더라도 유럽인들에게 외부의 토착민들은 서구의 빛으로 감화하고 계몽해야 할 미개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삐뚤어진 '인간애'라는 것은 이렇게 세계 인류를 절망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것은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니며, 결코 남의 일도 아니다.
현대의, 서구화 된 한국인들도 저들과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TV를 보며 인도의 악랄한 카스트제도에 혀를 차고, 이란의 잔혹한 인권탄압에 손사래를 친다. 아마 미제국주의가 '인도주의'를 목적으로 그들을 공격한다면 '인류애'의 입장에서 환호할 사람은 차고 넘칠 것이다.
세계에는 여러가지 민족과 국가가 있고, 그들은 각기 고유한 문화적 풍토와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가지고 있다. 민족성이 형성되고 고유한 가치체계가 자리잡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만의 내적인 요구와 또 목적을 가지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밭을 갈고 자식을 기르고 또 투쟁하게 된다. 생존과 번영을 갈망하는 이러한 이들의 목소리에 '너희는 우리의 말을 들으라.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라고 소리치는 자. 마치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과 같은 오만함으로 세계의 질서를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자. 이들이 인류애의 사도를 자처한다는 것이 현대의 희극이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또 우리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타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쇼비니즘의 본질을 숨긴 유럽적 휴머니즘은 결코 인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으며 침략과 착취로 인간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삶의 법칙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들이 그들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부터가 서구적 휴머니즘, 그것을 기초로 하는 유러피언의 세계관을 지금 즉시 벗어던지자. 다극화 된 세계를 위해 투쟁하는 것. 후손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제국주의에 고통받는 인민들과 연대해 영미놈들을 쳐부수는 것. 이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휴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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