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의 경험 - 헝가리 혁명 기념집회에 참가하다
헝가리에서의 경험 - 헝가리 혁명 기념집회에 참가하다
Frontschwein
2019년, 가을. 나에게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겨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동선을 짜는데, 예전부터 인터넷으로만 교류하던 헝가리인 친구(최소 내셔널리스트. 사실상 NS, 스트레잇엣지라 술담배 안함)도 만날 겸해서 그에게 방문계획을 말했다. 원래 나는 동부전선 진격하다 후퇴하는 독일군처럼 독일에서 출발,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를 찍고 다시 중부유럽으로 올 생각이었는데 10월 23일 헝가리 혁명기념일 집회 및 행진이 있다 해서 헝가리부터 들르게 되었다.
박물관에서는 리인액터들이 당시 사용된 장비들을 전시하고 방문객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필자도 기념사진 촬영
헝가리 혁명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각자의 관점마다 다르겠으나 일단 빨갱이들의 독재에 맞서 싸웠다는 것에 초점을 두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헝가리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건이다보니, 미디어에서는 극우라 불리는 내셔널리스트 단체의 행진과 집회도 계획되고 다른 유럽국가의 우파(?) 단체들에서도 대표들이 왔다.
혁명의 시발점이 된 라디오 방송국에서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당시 헝가리에는 북한에서 보낸 유학생들도 꽤 있었는데, 대학교 친구를 따라서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북괴는 이들이 헝가리의 수정주의 영향 받는 것을 원치 않아 긴급히 귀국시켰고, 일부는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여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도 만남을 가졌으며, 당시 남한에서도 혁명 소식을 듣고 헝가리에 의용병으로 가고 싶어하던 대학생들도 있었지만 냉전시대에 공산주의 국가로의 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했었기에 무산되었다. 아마 헝가리 혁명과 한국과의 관계는 이 정도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다.
내 친구는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 하니 내가 행진에 참여하길 원했으나 시위 집행부에서는 의견이 반으로 갈렸다. 동양인도 참여시켜 자신들에게 칠해진 'racist' 주홍글씨를 지우고 전 세계가 자신들의 대의를 지지하며 모두가 연대한다는 것을 보일 기회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한편으로는, 나이가 꽤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유럽인종을 위한 유럽을 주장하는 시위에 동양인이 있으면 자신들의 명성에 금이 간다고 생각해서 반대했고 결국 행진 참석은 무산되었다.
나도 그런 점은 이해는 하기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으나 내 친구가 오히려 화를 냈다.
누군가 기둥에 붙여둔 동성애 관련 스티커 위에 자신들의 단체 스티커를 붙인 모습.
결국, 현지인 친구는 이번 행진에 불참하고 나랑 같이 대열 밖에서 같이 걷기로 했다. 행진 코스는 헝가리 혁명 때 시위대의 행진 코스와 똑같이 하여, 소련 및 바르샤바 조약군이 진압하러 왔을 때 최후의 항전 장소였던 극장 건물에서 집회를 하고 선언문 낭독 및 연설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장소가 장소다 보니 건물 벽에 혁명 기념, 추모패가 보였다.
행진 때 구호는 "리아!리아!훈가리아!", "우리는 파랑과 빨강 다 필요없다". "유럽은 너의 유니온이 아니다!" 등등이었는데 수십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검은색으로 옷을 깔맞춤하고 떼창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장소가 장소다 보니 건물 벽에 혁명 기념, 추모패가 보였다.
그 전해에는 그냥저냥 추레한 와꾸의 사람들이 옷도 제각각 대충 입고 와서 오합지졸이었다는데 이번에는 검정 계통 사복으로 통일하고 주최 단체도 자기네 검정색 단체복에 흑복 바지를 입고 왔으며 인원도 전년도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주최 단체는 '레기오 훈가리아'인데 예전에 있었던 단체를 해체하고 새로 만든 단체이며 혁명기념일 집회는 이번이 두번째라고 한다.
행진 대열에는 앞뒤 좌우로 경찰이 따라붙어 혹시 모를 충돌을 방지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는 없었고, 큰 대로변에서 걸을 때(올린 사진 속 장소다) 어떤 아줌마가 건물에서 창문을 열고 “조용히 해라, 수구꼴통들아!”라고 소리쳐서 군중들도 야유와 조롱으로 응대했다.
최후의 항전 장소였던 극장 건물에는 혁명군 추모비와 동상이 있었고 날이 날이다 보니까 헝가리 국기나 관련 아이템 파는 가판대도 보였다. 마치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 파는 잡상인처럼. 물론 노점상(?) 규모는 한국보다 작았다.
헝가리 애국가 제창(나는 헝가리어도, 가사도 모르니 그냥 차렷 자세로 예를 표함) 및 연설문 낭독 시간 내내 거기 서 있다 보니까 국기 팔던 아줌마가 말을 걸어온다.
옆머리 밀고 포마드 발라 2대8 가르마를 만든 외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처음엔 일본인이냐 묻는다(유럽 여행하는 한달 내내 일본인 소리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나한테 한국에서 어떤 운동이나 단체 같은 것을 하냐 묻길래 별다른 활동은 없고 그냥 내셔널리스트 성향의 개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주먹 불끈 쥐면서 나한테도 애국 운동 같은 것을 하라고 권장한다.
극장 건물의 헝가리 혁명 추모 동상
집회가 끝났고 삼삼오오 모였는데 나도 몇몇 인원들과 같이 뒷풀이 하러 호프집에 갔다. 나와 내 친구는 헝가리산 무알콜 맥주를 시켰고 다른 인원들도 도수 낮은 맥주 한,두병만 마셨다.
얘네들한테는 내가 아마 살면서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최초의 동양인이자 한국인이었을테니 영어가 되는 사람들은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봤다.
솔직히 온몸에 문신 가득하고 키가 2미터인 근육질 빡빡이 아저씨의 겉모습은 무서웠다. 손에도 슈와스티카 문신에 안면에도 독일어로 '나의 명예는 충성이다(마이네 에르 하이쓰트 트로이. 친위대 슬로건)'라는 문신이 적혀있었고 온몸이 도화지마냥 그림과 글귀로 가득차있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영어를 못할 뿐이지 헤어질 때 악수도 하고 웃어줬다.
시위 참석자 중에 인상적인 사람이 또 있었는데, 멀리 루마니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이 친구는 영국 유학 경험으로 완벽한 영국식 영어 발음을 보였다.
유럽 근현대사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트란실바니아는 원래 헝가리 영토였으나 오스트리아, 오스만-투르크 등에 흡수되고 우여곡절 끝에 강대국들이 서명한 트리아농 조약으로 루마니아 땅이 된다.
그래서 이곳엔 여전히 마자르어를 쓰는 마자르 민족들이 살고 있고 이 친구도 역시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마자르인이었다. 이 친구도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우익운동 등등 이것저것 묻는데 솔직히 답하기 부끄러운 부분도 많았다. 그 외에도 유럽 여행 내내 한일관계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창 한일 외교 관계의 악화로 시끄러웠던 시절이다 보니 그렇다.
트란실바니아인과의 정치 대화는 나중에 기회 되면 따로 이야기해보겠다.
결국 헝가리에서의 경험으로 느낀 것 중 하나는, 나도 이런 종류의 운동이나 단체가 한국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을 써서라도 해서 사람들을 '선동' 하고 싶다.
이범석 장군의 족청을 계승하는 단체가 필요한 시대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나의 식견이나 지식, 경험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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