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는 무겁게, 죽음은 가볍게

의리는 무겁게, 죽음은 가볍게

김갑식

 윙거가 말하듯 현대 부르주아 문명의 특징 중 하나는 위험과 고통, 죽음과 같은 삶의 '근원적 요소들'의 완전한 제거에 대한 환상이다. 이것은 철학적으로는 공리주의와 맞닿아 있는 바, 그 근저에 있는 것은 '인권' 이데올로기로 표상되는, 인간의 물질적 쾌락과 육체적 안락이 인간의 행복을 담보한다는 발상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이든 이러한 공리주의적 세계관을 근저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데, 시장경제를 매개로 하든 계획경제를 매개로 하든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의 최종목적은 존 레논이 《이매진》에서 노래한 바와 같은,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다고 여겨지는 모든 요소들이 제거된 무균실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전통사회, 특히 조선민족의 전통적 질서를 들여다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가치관과는 양립할 수 없는 삶의 철학을 지니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 설령 민간신앙의 일부로서 현세적인 쾌락주의가 전승되었을지라도, 이것은 결코 지배적인 문화로 통용될 수 없었다. - 자기의 가족들을 모두 죽인 뒤 전쟁터로 나아간 계백 장군의 일화나, 적의 관용에도 불구하고 수차례나 적진으로 무모한 돌진을 거듭해 목이 베인 화랑 관창의 전설을 보라. 안호상 박사의 말대로 '의리를 무겁게,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야말로 우리 조상들의 무사도적 사생관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모든 쾌락주의적 욕망, 소아적 행복에의 욕구는 극복의 대상에 지나지 않게되고, 다가오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언제든지 고통에 몸과 마음을 내맡길 자세가 있는 유형의 존재가 이상적인 형상의 인간이 된다. 자아에 인생의 근거를 두지 않는 이들에게 있어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요, 그들의 삶은 자신이 의탁한 조국과 더불어 우리의 정신 속에 아직도 살아있다. 이러한 인생관이 기축이 되었기에 고구려의 확장도 가능했던 것이고, 화랑도의 부흥도 가능했던 것이며, 기득권을 박차고 나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의병의 신화도 창조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포스트모던사회의 가축화 된, 찰나적인 쾌락에 복종하는 인간들이 이러한 삶에 공감할 수 있을까? 아마 태고의 질서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갖는 이들만이 이러한 인생관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간들, 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부패했지만 자신의 피 속에 여전히 아득한 시원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 머나먼 타지의 전장에서 《화랑세기》를 품에 안고 조국을 위해 죽어가는 것이 유일한 낭만인 인간들이야말로 세계 자유주의 질서와 투쟁할 혁명반도 건설의 주체가 될 자격이 있는 이들이다. 실로 조선의 미래는 이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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